유동성 과잉과 신용경색이라는 냉온탕

 

신용경색이라는 망령이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 유동성 과잉이 전례 없는 상황에서 신용경색이 불거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돈을 값싸게 빌릴 수 있는 창구는 널려있고, 실제로 이렇게 빌린 자금으로 세계적인 기업들 M&A를 성사시키면서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돈을 빌려주는 문이 닫히자 다우존스를 밀어올렸던 M&A 재료는 썩은 생선처럼 내팽게쳐졌다. 돈을 빌려주지 않을뿐더러 예전에 빌려준 돈조차 빨리 상환하라고 난리다. 유동성 시장에서 시계바늘이 갑자기 거꾸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 했으면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 긴금자금을 방출하고 유럽, 케나다, 일본 등도 중앙은행들이 자금을 풀어댔을까?

 

그렇다면 왜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유동성 과잉이 갑자기 신용경색으로 돌변하는가? 주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선명한 이해 없이는 지금 아노미 상태에 빠진 세계 경제와 증시 흐름을 읽어내지 못할 뿐더러 우리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하염없는 순매도 공세도 알지 못할 것이다. 향후 모든 주가 예측은 신용경색 문제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나는 보고 있으며, 이 문제가 풀리는 것 또한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을 미리 언급해 두고자 한다. 이제 세계 유동성 과잉이 초래한 비극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유동성 증가 --- 글로벌 경제 불균형과 유가 급상승에서 발원

 

먼저 세계 유동성이 급팽창하게 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최근 신용경색은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이 저질러 놓은 후유증이기 때문에 왜 갑작스럽게 유동성이 늘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한다. 유동성은 시중에 흘러 다니는 자금의 총량으로 규정하자. 만일 실물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거래 규모가 커지게 되고 여기에 부합한 화폐수요가 늘게 된다. 중앙은행은 원활한 자금흐름을 위해 화폐를 찍어서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경제 볼륨이 커지는데도 유동성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면 실물자산 거래에 있어서 보틀넥(장애)가 생기고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된다. 화폐 유통은 경제에 있어서 피의 순환과 같기 때문에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는 실물부문 규모 확대에 맞게 통화량도 증가해 줘야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이 실물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하는 와중에 풀리는 유동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인플레이션을 적정하게 통제하면서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주는 선에서 증가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세계 경제는 탄탄한 성장을 이뤄왔고 이 부분에서 유동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달러 값이 싸지면서 일어난 유동성 증가에 있다.

 

달러 값이 싸졌다는 것은 달러가 시장에서 다른 통화에 비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 원화 등에 비해 최근 몇 년간 달러 가격은 상당 폭 낮아졌다. 환율은 그 나라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달러값 하락은 곧 미국경제가 전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추세로 읽어도 된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는 헤어날 길이 없는 듯이 보인다. 재정적자와 함께 쌍둥이 적자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미국경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내면 미국의 무역 상대국은 당연히 무역흑자를 낸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이 미국에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다. 달러 보유국 상위권을 이들 네 나라가 휩쓰는 이유다. 무역적자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달러 가격은 폭락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서 수출이 증가하고 미국은 무역흑자를 내게 된다. 이처럼 무역에 있어서 불균형과 균형 사이를 오가는 것을 환율이 중매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국제경제학 책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론은 괴리를 갖고 있다. 미국은 계속 무역적자를 내고 있고 달러 가치가 떨어져도 무역적자기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런 상황이 20년 이상 지속되었기 때문에 달러는 휴지 조각이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달러 가치가 휴지가 되는 것을 막는단 말인가?

 

 

미국 최후의 무기 --- 달러 발권력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기계를 소유한 유일한 나라. 모든 가정을 다 삭제하고 상상해보자. 미국인들은 먹을 빵이 필요하다면 달러를 찍어서 빵을 프랑스에서 사오면 그만이다. 옷이 필요하면 달러를 찍어 중국에서 사면 된다.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화폐에 대한 발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문제는 무제한으로 달러를 찍어내서 외국에다 뿌리면 달러 값이 떨어지게 되고 빵과 옷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내고도 아직도 나라 꼴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의문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달러 발권력을 보유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는 아직도 뭔가 확연하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답은 대규모 무역적자로 인해 해외에 풀린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중국은 달러자산을 1 3,300 억 달러나 보유하고 있다. 대규모 대미 무역 흑자 탓이다. 그런데 보유달러 중에 9,000 억 달러를 미국 재무성 채권 구입에 사용했다. 대부분이 다시 미국 정부 수중에 넘어가 버렸다. 일본과 한국, 대만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보유한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를 사는데 거의 다 쏟아 부었다. 미국을 상대로 죽어라고 돈을 벌어 다시 미국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준 것이다. 물론 미국은 연간 채권이자 5% 정도를 주면서 생색은 있는대로 낸다. 이 부분이 그나마 달러가치가 폭락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된다. 만일 동남아 무역 흑자국들이 미국 재무성 채권을 사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미국은 그 즉시 맛이 가버릴 것이다. 달러는 물론 폭락할 것이 뻔하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은 무역적자 못지 않게 재정적자를 엄청나게 내야 유지되는 국가다. 중국과 한국, 일본 등이 미국 재무성이 발행하는 채권을 사준다는 것은 바로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낼 수 있는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정부가 국채 발행을 하는데 사줄 사람들이 없어 발행에 실패하면 미국 정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공적 자금 지출을 중단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은 정부나 국민 모두 빚더미 위에 앉아서 호의호식한다고 보면 된다.

 

어제 중국 고위관리가 텔레그라프라는 신문사 기자에게 말했다.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팔겠다  미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폴슨 재무장관은 물론 부쉬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국이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중국의 일개 장관급 관리의 비공식적인 말 한마디(물론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에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난리를 피운 것이다.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위안화 절상을 하라고 압력을 넣자 중국측에서 퉁명스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그 부분에서 전세가 역전된 느낌이다.

 

 

유동성 증가로 헤지펀드 등 기승을 부리다.

 

이처럼 미국이 국가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무역 불균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벌어지는 것은 달러가 해외로 유출된다는 점이다. 이 달러는 많은 부분 다시 미국 정부 손으로 들어가지만 일부는 유동성 증가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중동 및 러시아 국가들이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여기서 국제금융시장으로 흘러드는 오일달러 역시 국제 유동성 증가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늘어난 유동성 증가 요인을 세가지로 본다. 전반적인 글로벌 경제 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통화 공급, 유가인상에 따른 오일 달러 확대, 글로벌 경제 불균형에서 오는 유동성 증가.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흘러 들면서 그 가치를 뻥튀기 하면서 버블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자 금리는 낮아졌고 사람들은 돈을 빌려 집을 사고 땅을 사고 펀드에 가입했다. 집값, 땅값, 주가가 올랐다. 처음엔 돈이 있는 사람이 집을 샀지만 나중엔 돈이 넘쳐나자 돈이 없는 신용불량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이자를 더 높게 받는 조건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실시한 것이다. 미국에서 약 500 만명이 이런 조건으로 집을 샀다. 모기지 업체들은 이자를 좀 더 높게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서 모기지 부실의 싹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지옥에라도 찾아가는 작자들이다. 조금이라도 투기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땅을 놓치지 않는 헤지펀드가 모기지 시장에 발을 담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기지 대출 회사들이 대출 채권을 유동화 시킨 것이다. 모기지 담보채권 (MBS), 자산담보채권 (CDO),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금융상품이 모두 모기지 대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만들어진 최첨단 금융상품들이다. 기초자산의 금리가 높으니깐 수익성도 꽤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자산 유동화 증권을 헤지펀드나 대형은행, 투자은행, 증권사, 보험사 들이 구입했다. 어제 난리가 난 BNP파리바은행도 이러한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유동화 채권에 투자했다가 망쪼가 든 경우다. 특히 헤지펀드들은 이러한 증권에 투자할 때 의당 레버리지를 쓰기 때문에 피해는 기하급수적이다. 10% 자기자본만으로 그에 열 배에 해당하는 자산을 살 수 있다. 금융기관들이 헤지펀드에게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산가격이 빠지기 시작하면 레버리지의 반대효과인 디레버리지가 작동하게 된다. 이젠 자산가격이 10%만 빠지면 헤지펀드들은 깡통을 차게 된다. 곧바로 마진콜을 당하게 되어 금융기관들의 대출금 상환 압력이 거세진다. 그렇게 청산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15% 정도 확 빠져 버리면 헤지펀드는 부도가 나고 대출해준 은행 역시 부실이 발생한다. 지금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이러한 부실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출채권을 기초로 한 자산 유동화 채권을 편입한 상품의 규모가 파악이 안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도 말을 못하고 끙끙 속알이를 해야 한다. 괜시리 얼마를 보유 중이라고 커밍아웃 했다가는 주가는 폭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미국 투자은행들은 이제 사모펀드에 투자를 꺼리게 되고 헤지펀드에게도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거꾸로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하기 때문에 자금시장에서 사태가 악화일로가 되면서 소위 <신용경색>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용경색이 전지구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 시키면서 만들어낸 금융파생상품을 전세계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대만, 일본 은행들의 부실이 확인되었고 우리 은행도 몇몇은 보유 중이라고 했는데 그 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다.

 

 

신용경색이 풀리고 주가는 오를 수 있을까?

 

지금 증권시장에 암울한 먹구름을 몰고 오는 신용경색은 그 뿌리를 찾아가면 유동성 과잉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동성 과잉의 원인을 찾아보면 글로벌 경제 불균형이 나타나고, 그 불균형의 뿌리에는 빚잔치로 돈을 펑펑 과소비하는 미국인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아시아 외환위기 때 아시아 몇 나라와 우리 나라가 망했다면 이번 신용경색은 미국이 망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과소비를 한 것이다. 부동산도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는 문제가 안되었지만 금리가 슬금슬금 올라가자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이 것이 모기지 부실의 실마리가 되어 신용경색이라는 눈덩이로 불어난 것이다. 지난 10년간 서브프라인 대출을 받아 빚내서 집을 산 500 만 채 중 170 만 채가 다시 경매물건으로 나왔다. 이보다 신용도가 높다는 <알트-A> <프라임론> 시장도 이미 술렁거린다. 전채적으로 500 만 채 가량이 매물로 나왔다. 부동산 버블이 심각하다는 이야기.

 

미국 정부는 당장 금융기관 부실을 막기 위해 긴급대출을 실시했다. 유럽 중앙은행은 무제한 자금방출을 선언해버렸고, 일본 호주 중앙은행도 개입했다. 현재 상태로는 이 문제가 어디까지 번질지 쉽게 예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미국 FRB가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한다. 그래야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낮아지게 된다. 버냉키는 아직까지도 금리인하를 미적거리고 있다. 설사 금리를 내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어제 미국시장에서 다우지수 하락세가 주춤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불안에 따른 공멸을 막기 위해 대형은행들이 의도적으로 다우지수를 조작한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다우지수는 미국의 30개 대형 기업 주가만을 평균해서 산정한다. 따라서 이 주식만 확 끌어 올리면 된다. 주가 폭락은 연쇄도산을 가져오기 때문에 다우지수를 안정화 시키자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시장은 어떻게 될까?

 

우리 시장은 전적으로 외국인들의 매도공세에 달려 있다. 기업이 이익이 많이 난다는 뉴스도 무의미하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들은 미국에서 발생하는 신용경색 때문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머징 마켓에서 주식을 파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증시가 올해 중국 다음으로 상승율이 높았고, 주식편입비중도 다른 이머징 마켓에 비해 높다. 주식을 내다 팔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장인 셈이다. 한국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눈이 멀어 앞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식을 사재기하고 있다. 나는 요즘 개인투자자들이 하루에 수천 억 원씩 주식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감이 느껴진다. 신용경색이 마무리 되는 시점까지 시장에 비켜서서 사태추이를 관망해야 하는데 미국발 신용불안은 게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개인들이 무한정 주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도 신용경색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벌써 금리가 5%선을 넘었다. 유동성이 많기는 하지만 그 자금이 주식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상승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시장의 정체가 두서너 달 끌다 보면 자금유입도 줄어들기 마련 아닌가? 가격조정이 마무리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간조정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기다림의 시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미국 시장이 안정을 찾고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가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출처 : 네이버 포카라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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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나는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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