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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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체제는 19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자본주의 가추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희생된 노동자의 고통은 점점더 커져만갔다. 2008년, 영국의 BBC에서는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뽑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1위는 바로 칼 마르크스였다.(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1위 칼 마르크스, 지난 1000년간 가장 영향을 끼친책은? 1위 자본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는? 1위 칼 마르크스) 물론 어떤이는 이해가 안갈 수도 있을것이다. 보통 마르크스를 이야기를 하면, 그의 혁명적인 투쟁이나, 공산주의를 생각하기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초로 가난한 사람은 왜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과연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진 철학자였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인해 기계부품처럼 되버린 노동자의 삶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던 경제학자였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저널리스트 일을 시작했으나, 젊은 시절 대부분 도망을 다니면서 보냈다.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던 '라인신문'은 당시 지배자들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정부 당국에 의해 폐간되었다. 마르크스는 좀 더 자유로운 환경을 찾아 파리로 거처를 옮겼으나, 빈곤과 경제적 부정의를 폭로하고 급진적인 해결책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얼마 못 가서 추방되었다. 1849년에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한 후 '뉴욕 데일리 트리뷴'등의 신문에 기사를 쓰면서 간신히 생계를 꾸렸다. 그의 아내 제니는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난하였다. 그러다 1855년 4월 그의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사망하고, 궁핍한 생활은 이후 5년동안 계속되고, 그 사이 마르크스는 6아이중에 3아이를 잃었다. 마르크스의 문제중 한가지는 돈이였는데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기때문에.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후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은 얼마간 유산과 엥겔스의 기부금 덕분에 생활의 안정을 찾았는데 이때부터 마르크스는 자본론 집필에 전념였다. 그가 자본론을 쓴이유는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부론을 수백번 읽었다. 그리고 자본론에서 가장많이 인용한 책이 국부론이였다. 더디여 1867년 그가 15년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 '자본론 1권-자본의 생산과정'이 출판된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제일먼저 상품를 다루었는데, 상품은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말하는데,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사용가치'와 '교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가치' 이 둘다를 가지고 있는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정의된다고 말했다. 즉 6시간동안 6켤례의 신발을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노동시간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화폐를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보았고,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화폐의 물신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 했다.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이어 받아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으나, 아담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부품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자본론을 쓴 주요 목적은 바로 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는 왜 항상 가난할까? 반대로 놀고 먹는 자본가들은 왜 점점 더 부자가 될까? 하는 의문을 풀기위해서였는데, 그는 마침내 그 해답을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아냄으로써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이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로 이를 설명했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했는데,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자본가의 이기심때문에 기계가 계속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자가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일을 할려는 사람은 많기때문에 임금은 더 낮아지고, 이렇게되면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게 되니,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본주의 위기인 공황이 시작되고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아담스미스가 자본주의의 예언자라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비판자였다. 마르크스의 공헌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재정리 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이라고 말하는 것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기타 여러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섭렵한 후 그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고찰하는 대안적인 방식을 발전시켰다.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주로 활동했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가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마르크스와 그의 동료인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실제 역사를 충분히 관찰한 뒤 이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그들은 현대 산업의 엄청난 생산성과 더불어, 당시 영국의 새로운 산업도시들에서 빈곤과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것을 보았다. 마르크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모델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이 강조되거나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경제적 이해관계에는 조화만이 아니라 갈등도 존재한다. 두 개인이 자발적인 교환방식으로 서로 거래할 때 거래 당사자는 모두 이익을 얻는다(그렇지 않으면 왜 거래를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교훈이다. 왜냐하면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대부분 교환(혹은 경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교환이 교환에 참가한 당사자들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조건(강도가 "돈 내놔, 아니면 죽인다"라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에 다라 교화느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권력.압력.강제성의 행사(일반적으로 우리가 '명령'이라고 부르는)가 대부분의 경제체제에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어떤 사람들(고용주)은 토지, 공장, 사무실 건물과 같은 생산적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노동자)은 이런 종류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 주목했다. 그 결과 소득뿐 아니라 권력에도 차이가 발생하며 이런 차이가, 한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계급이라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경제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둘째, 마르크스는 이기심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생각을 확장시켜,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자신들의 이해를 방어하고 증진시키고자 함께 행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통적 경제학 교과서들은 경쟁적인 시장 관계, 개별 경제 행위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집단으로 협력해서 활동하며, 개인의 경쟁적 행위에만 관심을 갖는 접근은 인간 상호 작용의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된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집단이 존재한다. 이 집단들은 규모도 다르고 구성원이 서로 중복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촘촘하게, 어떤 경우는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목적도 다르다.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서로다른 집단들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고용주, 노예와 노예주 같은 경제적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 했다. 이런 계급들 안에서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를 위해 행동하면서도 종종 공통의 이해를 향상시키고자 집단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한 사회의 생산 잠재력을 완전히 발전시키는데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의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갈등때문에 기술과 지식의 진보가 가로막히는 경우가 종종있고, 어떤 기술은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지만 특정 회사의 이윤율을 낮추거나 특정 산업에서 일자리를 없앨 수도 있기때문에, 이윤율저하의 경향을 받는 기업이나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들이 실력을 행사해 기술과 지식의 진보에 저항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석유회사는 대체에너지원 개발에 반대하며, 부두 노동자 조합은 컨테이너 운송 기술 도입을 저지한다. 음반 회사는 '복사방지' 체계를 고안하고자 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사회는 사적인 경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는 인간의 지적 능력과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였다.

셋째, 마르크스는 어떤 경제체제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히 그 자체의 작동에 반응해서 변화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나의 경제체제를 고정된 일련의 관계들(예컨대 경쟁적 시장과 자발적교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체제의 작동 그 자체가 경제활동이 수행되는 조건들을 변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특히 자본주의로 인해 경제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도시가 발전하며, 물질적으로 한층 풍요해지고, 국제적 인구 이동이 발생하며, 가족의 가치가 변화해 나가면서, 결국에는 스스로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는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가능 아끼던 의자에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후, 엥겔스는 그의 유고를 모아서, 1885년 자본론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을, 1894년 자본론 제3권-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발간했다. 그리고 자본론은 사회의주의 성서로 불리우며, 성서버도 더 많이 팔린책이란 영예를 얻게된다. 또한 한세기가 흐른뒤에,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중 단 한명이라도 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칼 마르크스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도와서, 공주주의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가였고,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세상을 해석한 철학자였으며,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경제학자였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평가가 나올수 있을것이지만, 분명한것은 마르크스가 철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자본론이 세상에 나온지 14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가 붕괴할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독재와 빈곤에 시달렸던 공산주의가 1980년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 북한과 대립중인 한국에서 마르크스를 객관적으로 보는것은 어려운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입밖에 내서는 안될 인물중 한 사람이였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만은로 자본론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사실 자본주의는 위기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가 우리에게 절박한 메시지가 되었기때문이 아니였을까? 물론 자본론의 가치를 마르크스의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열정과 연민을 가지고 자본론을 썻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전에 그것이 제일 먼저 주목해야하는 자본론의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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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나는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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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스미스는 시장을 이해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활을 했을뿐 아니라 수많은 시장으로 이루어진 전체 경제가 어떻게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한 개척자다. 경제학의 모든 학파가 시장의 작동을 중요시하기때문에 스미스는 경제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스미스와 이후 두 세대에 걸쳐 그를 따랐던 뛰어난 경제학자들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로 불리게 된다.

1776년 출간된 그의 위대한 저작 '국부론'의 세가지 견해는 이후 정치경제학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활을 했다.

첫째, 아담스미스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리고 서로 알지 못하는 생산자,운송자,판매자, 구매자 등 무수히 많은 경제적 행위자의 독립적인 활동들을 사회는 어떻게 조정(coordinate)할 수 있는가라는 경제학의 근본 문제를 확인했다. 이 조정문제는, 어느 개인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없기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스미스는 노둥분업, 즉 모든 경제체제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서로 다른 물건들을 생산하면서 타인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의 주장 간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좀 더 풍요로운 미래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했던 공장제의 등장이 실제로는 인간 노동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노동의 분업이 업무의 특화를 낳을 것이며, 사람들의 지적 능력은 평소 그들이 하는 일 속에서 형성된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말한다.  "평생 한두가지 단순한 작업만 해온 사람은 ..... 그가 가진 지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고, ..... 따라서 그런 의사 표현의 성향을 아예 잃어버리게 되어 가장 멍청하고 무지한 존재가 된다."

둘째, 아담스미스는 경제주체들 각자의 개인적 이기심에 맡겨 놓더라도 사회의 노동 분업을 조정하는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아주 급진적인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런 생각이 당시에 급진적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특정 개인이나 제도가 의식적으로 질서를 만들거나 유지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질서가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보다 1백여년 먼저 활동했던 토마스홉스와 같은 이전 시대의 영국 철학자들은, 수많은 사람이 이기심을 쫓아 행동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게될 혼란을 피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스미스는 다음 두 가지 조건만 만족된다면 시장, 더 정확하게는 시장 체계가 이 기능을 대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소유권이 잘 정의되어 있어서 누가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명확해야한다(그래야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수많은 사람들 간에 충분한 경쟁이 있어서 어떤 시장도 독점되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활을 제한하고자 했던 스미스가 편협하게 한 측면만을 바라봤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정부가 국가를 외부 경제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경찰과 법체계를 통해 내적 정의를 확립해야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또한 다리, 도로, 운하, 기타 공공사업(무상교육과 같은)에 정부가 투자할 것을 요구 하였으며, 지나친 음주를 줄이기위해 알코올에 세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달리말하면,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에도 예외가 많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의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부가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직된 것인 한, 정부는 실제로 가난한 자들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째, 스미스는 경쟁적 시장의 체계가 이기심을 좇는 개인의 행동을 어떻게 사회에 유익한  결과로 나타나게 하는지를 설명했다. 이 생각 또한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이였는데, 당시에 이기적인 행동이 비도덕적인 것이라고들 생각했기때문이다. 스미스는 농부나 이발사의 이기적인 행동이 탐욕에 기초하고 있지만 탐욕을 좇는 것이(적절한 조건에서는) 모두에게 유익할 수 있다는것이다. 아담스미스는 이를 '보이지않는 손'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시장이 경제를 인적자원과 자연자원을 가장 잘 이용하는 상태로 인도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장이 경제를 조절할 것이고, 시장이 이기심을 전체 사회의 물질적 진보에 이바지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했으며, 정부의 적절하지 못한 역활, 특히 개인의 경제활동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 이익의 추구가 종종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몹시 우려했다. 예를 들어, 공장의 강압적이고 지독히도 단조로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국이 생각 없는 로봇들의 나라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흔히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가 오늘날까지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친기업적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종종 무시하는 것은 아담스미스도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담스미스는 이렇게 경고한다. "정부에 대한 기업가들의 조언은 몸시 주의해서 들어야한다. 그리고 최대한 의심을 품고, 오랜 시간을 거쳐 주의 깊게 검토되기 전까지는 그 조언을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들의 이해는 공공의 이해와 결코 일치 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그들은 대중을 속이고 심지어 억압하고자 하는 이해를 갖는다."

더욱이 그는 이기심을 좇는 것이 항상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 그러나[일단 만나서 하는]대화는 대중을 속이고자 하는 음모로 끝난다."

또한 스미스는 부자들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기도 했다. '국부론'가운데 임금에 관한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라면 그 어떤 사회도 번성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가난하고 비참한 다수의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다수가 최소한 스스로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이 생산한 노동의 결과물 가운데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 바로 형평성이다." 그러나 '국부론'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큰 부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상당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아주 큰 부자가 한 명 있으면 적어도 5백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며, 소수의 풍요로움은 다수의 빈곤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담스미스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그의 저서에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간의 도덕적 범위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체제라는 이상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지금의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위기에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국부론의 윈제는 "WEALTH OF NATIONS"이다. 즉 특정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여러 국가와 국민이 함게 잘 사는 것을 연구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1%의 탐욕과 부패, 나머지 99%가 고통받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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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나는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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